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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하운 김남열의 자본적 민주주의의 마성

by 시인 김남열 시문학 202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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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본적 민주주의의 마성魔性

-대중-

 

하운 김남열

 

우리 사회는 자본적 민주주의 사회이다. 아니 자본주의적민주주의 사회란 자체가 모순이라는 마성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마성적 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또한 모순적 두 개의 얼굴을 지닌 대중이다.

 

자본적 민주주의 사회란, 자유와 정의를 바탕으로 대중이 자본을 창출하고 대중에 의하여 자본이 순환되어가는 사회이다. 그 만큼 대중은 자본적 민주주의에서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따라서 자본적 민주주의는 대중의 사회이며,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등이라는 미명하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경제적 구조가 형성되어지며, 정치 및 사회구조 전반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 자본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다수를 위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불과 같이 쉽게 타오르다가 명분 아닌 명분에 의해서 쉽게 꺼져버리는 양상을 보이며, 개개인의 인간 소외와 인간의 획일화에 의한 인간성의 박탈을 야기 시키는 주체가 되고 있다.

 

그러한 박탈 현상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이 사회를 주체성 있게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비인간적 관계로 만들며, 인간의 모습과 의식마저도 단순화 시켜 깊은 잠을 자게 만들었다. 그것은 대중이 무슨 일이 발생하면 쉽게 몰려와 박수치는 박수무대가 되었고, 그리고 누군가를 토끼몰이 하는 군대와 같은 행위를 하는 대중들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적 사회. 그 곳에서 자본은 이제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여 가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대중이라는 거대공룡과 같은 힘의 집단에 의하여 왜곡되기 시작했다. 대중은 왜곡의 주체가 되었고 힘이 되었으며, 그 대중이 창출하는 자본에 의하여 현실의 사건 사고들도 왜곡되기 시작했다.

왜곡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영어: democracy)란 큰 의미가 없다. 자유와 평등 아래에서 모든 대중이 균등하게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며 전체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하는 사상이나 정치적 이념을 행사하는 진정한 가치를 주관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이 사회에서 민중은 사람과 사람을 포식하는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권익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된다고 하면 언제든지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사회에 뛰어들어 광신적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개인의 힘이 부족하면 민중이라는 거대한 힘을 빌어 폭도로 전략하였기 때문이다.

대중은 원시 야만의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진정한 자본적 민주주의는 이미 벌써 대중들에 의하여 깨어지고 무너졌다. 자본적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인식하였다 손치더라도‘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의지를 대중은 이기적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애시 당초 포기해 버렸다. 어떠한 창도 막는다는 방패와 어떠한 방패도 찌를 수 있다는 그 자체적 모순을 안고 있는 자본적 민주주의를 아무런 여과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버렸다.

 

이제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무의식, 무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자본이 움직여 가는 사회에서 인격은 자본에 의하여 좌우 되었고, 인간자체 마저 동력화, 기계화, 단순화, 편리화 되어갔다.

대중의 사고도 기계화 되었으며 기계에 의하여 예속되어 기계적인 규칙이나 원칙에 따르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또한 인간관계가 이해득실을 중시하고 단면적으로 변화되어 인간적인 소통도 하기 힘든 상황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성 속에서 인간다움의 증표가 되는 인간성마저 아무도 오지 않는 외딴섬으로 유배시키며 소외를 가중시켰다.

그리고 기계화에 노출되어 있는 대중은 사회를 주도하는 소수의 집단이나 생산자의 결정에 동조하며 살면서 그 집단과 조직에 의한 그들의 목적적을 위한 그들의 도구가 되었다.

 

이제 자본적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대중은 과거의 봉건적 농업사회에서 그 사회를 지탱하는 진정한 국가 발전적 노동력이었고 사회 동력원이었다면,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어느 소수집단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동원되는 도구적 부대가 되었다.

따라서 소수집단은 그 사회를 지배하기 위하여 핵심적인 사회제도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특정지역이나, 특정한 장소에 집중화시키며 그로 인하여 도구화된 대중은 그들의 존재마저 위협을 느끼게 되었지만, 소수집단은 쉽게 모였다 쉽게 흩어지는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대중의 심리를 교묘히 쉽게 활용하게 되었다. 그것은 개인 자존의 힘을 상실한 대중의 당연한 귀결점이었다. 대중은 곳곳에서 이제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집단으로 변신하여 언제든지 폭발음을 내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민주주의의 이념적 가치와 살아있는 생명들의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대중은 왜곡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정치 형태는 다수의 민중이 지배하기도 하고 지배받기도 하는 모습이 되었고, 또한 소수에 의해 정치가 행해지며, 상대방을 비인격적 존재로 만드는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소수의 참된 의견이나 비판은 대중의 그림자에 철처 하게 격리되거나나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주 시민이란,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인 민주적인 가치관 그리고 그것을 행동화할 수 있는 시민으로 정의마저 대중 스스로가 실추시켜 버렸다.

 

변한 것이 있는 것 같으나 없게 되었다.

얼굴은 성형되어 곱게 보이나 정신은 성형되지 않아 추악한 실상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며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헌법이나 법률, 제도가 어느 개개인 집단의 도구가 된지는 오래 되었다.

제도와 법률 외에도, 민주사회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의지와 더불어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의 실정과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국민들의 정치, 경제적, 문화적 의식은 삼류가 되어 버렸고 언제부터 저 밀림에 유폐시켜 버렸다.

 

외형적 경제 성장은 보인다고 하지만 아직은 나라의 국고가 위태위태하다.

언제든지 제국주의적 금융자본세력들에 의하여 IMF가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이다. 외세 자본의 경제적 침투에 은행, 기업, 나라의 땅이 합병되어진 상황이 그렇다.

현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인 대중의 의식은 그대로이며,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협이 되고 있다.

 

깨어나자

 

하운 김남열

 

민족이여 일어나자

백성이여 깨어나자

대중이여 눈을 뜨자

 

나라를 위하여

역사를 위하여

다가오는 우리의 세대를 위하여

 

나라 없는 민족은

역사 없는 민족은

의식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희망이 없다

꿈이 없다.

 

6.25 참변이 언제였던가?

삼풍백화점 참사가 언제였던가?

IMF가 터진지가 언제였던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언제였던가?

서해 연평도 해전이 언제 였던가?

세월호 참사가 언제였던가?

 

눈으로 보면서도

과거의 사건 사고를

피부로 느끼고 보면서도

자신에게 닥치지 않으면

이웃집 불구경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인간의 악의 근성이

인간의 존엄마저

이웃집 강아지의

죽음보다 못하게 여기고

 

우리의 경제가 외세

자본에 의하여 잠식되었는데도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동북아 공정에 의하여

왜곡되어 지고 있는 대도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위하여 외치는가?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위하여 벌떼처럼 모이는가?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위하여 촛불집회를 하는가?

 

아! 자신의 이기를 위하여

자신의 뱃속을 위하여

자신의 목적과 수단을 위하여

자신의 대의명분을 위하여

하루아침에 내 앞의 동지를 적으로 여기며

개도 물어가지 않는 돈처럼

개도 물어 가지 않는 의義를 만들어 버리며

너와 나 우리가 박수부대가 되어

정신을 잃어버린 좀비가 되어가는구나

 

아, 세대가 지나도

깨어날 줄 모르는 민족이여!

아, 세대가 지나도

잠자고 있는 백성이여!

아, 세대가 지나도

불감이 되어버린 동족이여!

 

정치와 행정도 바이러스가 걸려 있고

문화와 법도 바이러스가 걸려 있고

경제와 사회도 바이러스가 걸려 있는데도

여전히 이기로 가득 찬 우리 몸의 아가리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만 생각 하는구나

 

의식 있다는 남녀노소 지성인들이여?

의식 있다는 남녀노소 지식인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위하여 떠들고 있는가?

그대들은 사회의 일탈을 도모하며

사회의 균형을 깨트리는 공모자가 아닌가?

 

세상이 아사리 판이 되고 있는데도

자신의 명예만을 위하여

자신의 명분만을 위하여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가엾은 삐애르가 되었구나

 

하늘은 그 시 대에 너와나 우리에게 화답을 한다

나라의 소중함을 모르고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이웃의 소중함을 모르고

작은 것의 신성을 모르고

어두움의 동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온 천지를

폭풍우, 지진, 해일로 천재지변 일어나

불바다가 되게 한다

그래서

그 나라의 백성이, 민중이, 대중이 깨어나

지금 자신이 살아있음이

커다란 축복임을 알게 하리니

 

깨어나자?

그래서

제1의 종살이, 깨어나지 못함에 의한 일제식민지

제2의 종살이, 깨어나지 못함에 의한 미소의 남북분단

제3의 종살이, 깨어나지 못함에 의한 금융자본 세력 의한 경제적 합병

제4의 종살이, 깨어나지 못함에 의한 또 다른 불운을 맞이하지 말자

그리하여 노예가 될 것인가? 진정한 주인이 될 것인가. 에 대한

천지가 개벽하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서지 말자

<하운 김남열의 시 깨어나자 중>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는 듯하다. 과거에 대중들이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대중으로 뭉쳐서 노력하든 것처럼, 이를 쟁취하는데 성공하였던 과거의 잠재의식이 아직 살아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동체 의식에로의 대중들이 아직 살아있는 한, 진정으로 어두움 동굴 속에서의 수면 상태에서 깨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적민주주의의 자체적 양날의 모순을 깨부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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