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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하운 김남열의 "제자를 백수건달로 만든 예수라는 사나이"

by 시인 김남열 시문학 2021.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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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백수건달로 만든 예수라는 사나이

 

하운 김남열

 

현대사회는 다양한 직업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직업(職業)이란 생계를 위해 일정 기간 동안 행하는 일을 뜻합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이니(고용 형태에 따라 분류) 하면서 자기주장이 난무하는 때에 직장 없이 사는 사람도 많다. 그를 우리는 실업자라고 하며 실업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그를 우리는 사회적으로 효용가치를 상실한 ‘백수(白手)’라고 비꼬아 칭한다.

‘놀고먹다’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로 실제적으로 좋은 의미로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수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 보려한다.

우리는 백수 하면 한자로는 백白(흰백)에 수手(손수)를 쓴다.

여기서 손은 그 사람의 행동을 뜻한다. 손으로 좋지 못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고 '손버릇이 나쁘다'라고 말한다. 또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보고 '검은 손'이라고 하는 것도 그 사람의 행동을 손에 비유해서 이다.

 

그와 반대로 행동을 뜻하는 손이 희다(백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그만큼 깨끗하다는 것이다. ‘손수 밥을 짓고’ ‘손수 빨래를 하고’‘손수 애기를 돌보며’ ‘손수 부모님을 봉양 한다’ 라고 할 때 참다운 인간으로써 삶 자체에 '악(惡)'이 없으며 어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깨끗한 삶을 누리는 존재의 손을 의미한다. 또 동양에서 한의학에서는 ‘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손으로 우리 신체의 비밀을 말하며 신체적 정신적인 건강성을 말하기도 한다. 이 같이 손은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백수하면 뒤에 붙는 수식어가 있다. 건달(乾達)이란 말이다. 이 건달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은어(좋지 못한 의미)로 사용되는 의미와 실제적 다르다. 건달의 어원을 인도의 한 신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뜻은 간다르바 [ Gandharva ] 향신(香神) ·후향(嗅香) ·향음(香陰) ·심향(尋香) ·식향(食香) 등으로 의역(意譯)되고, 건달바(乾達婆:楗達婆)로 음역된다. 갖가지 신화를 갖고 있는데, 《베다》에서는 술의 신 ‘소마’의 수호자로서 바다 구름 등과 연관이 있고, 혼례(婚禮)의 노래에서는 신부에게 감겨드는 남성 정령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천상계의 악사(樂師)로서 천상에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 하늘의 무희(舞姬) 아프사라스의 배우자이다. 긴나라(緊那羅)와 함께 제석천(帝釋天)을 모시며 기악(伎樂)을 연주한다. 술 ·고기를 먹지 않으며, 다만 향을 찾아다닐 뿐이므로 심향(尋香)이라고도 한다.

 

이것과 그 한자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건달(乾하늘건,達통달할달)은 통달한 사람 세상만사의 모든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백수건달‘이란 행동이 깨끗한 하늘의(세상만사)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정신이 황폐한 시대에 정신적 스승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정신적 스승의 대표적 인물이 성서에 나오는 ‘예수라는 사나이’이다.

그는 베드로를 포함한 그의 열두 제자 모두를 백수건달인 정신적 지도자로 만들었다. 자기의 직업 전선에서 살아가던 어부, 세리, 학자.., 등을 현대적의미로 표현하면 백수, 실업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영원한 삶을 얻으리라” 는 것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밥벌이를 걱정할 필요 없으니 따르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따랐다. 아마 그들의 마음의 한 구석에는 여백이 있었으리라 본다. 꽉찬 마음이었다면 예수라는 사나이의 말들이 먹혀들어 갔겠는가.천부당만부당 가당치도 않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 이었을 것이다. 그들도 예수라는 사나이에 대한 믿음의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백수건달’이었던 그들은 ‘반석’이 되었다. 대중의 지도자가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전문적 직종으로 살아가는 사람, 말을 통하여 메신저로써 살아가는 사람 이 모두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다.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밥벌이가 되는 것이다. 전문적 직종을 통해 좀 더 업그레이드 된 기계화가 가능하게 하고, 정신적 카운셀러가 됨으로서 영혼을 맑게 카타르시스(=정화)를 느끼게 한다고 본다면 ‘예수라는 사나이가 살던 시대’ 대중의 정신적인 스승이 되어야 했던 그래서 ‘백수건달’로 살아야 했다면 ‘제자를 포함한 예수라는 사나이’도 그 시대의 대중의 스승으로서 충분한 직업군을 가진 존재로서 사회에 일조하는 역할을 충분하게 했다고 본다. 그들은 진정한 스승으로, 지도자로서의 ‘백수건달’이었지, 사회에 효용가치 없이 땀 흘림 없이 사는 것을 그래서 사회를 부정하며 ‘내 탓이요’ 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해악이 되는 ‘놀고먹고 건들건들한’ 그러한 백수건달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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