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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열 평론

시인 김남열 평론 / 차갑거나 뜨거운자

by 시인 김남열 시문학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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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콩밥 먹이게 한 공모자는 우리 모두다

 

정치는 물 흐르듯이 해야 한다. 물은 어디에든 흘러간다. 그러나 그 물이 고이면 썩는다. 정치가 물 흐르듯이 하지 않으면 정치는 바른 정치가 되지 못하며, 정치라는 우물 속에는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난립한다. 전(前) 대통령이 콩밥을 먹고 있다.

그 콩밥을 먹게 한 국민과 전 대선에 나선 대선 주자들 모두가 전(前) 대통령을 콩밥 먹게 한 정신적 공모자이다. “죄 없는 자는 돌을 던져라 라고 간음한 여인네를 지적하며” 군중들에게 말하자, 군중들은 돌을 던지지 못하고 하나, 둘 사라진다. 이 말은 성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 우리는 죄인으로 몰아, 죄 있는 사람으로 몰아 한 나라의 대통령을 헌법재판소라는 명분의 칼날로 감방으로 보냈다.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아서. 그러나 진정, 우리 국민이나 전번 대선에 나온 사람들이 개인 스스로 ‘죄 없는 자라고 생각한다고’ 하면, 과연 돌을 던졌겠는가? 우선 나부터 생각해 본다. 아니, 반성해 본다. 국민으로써의 권리를 행사 하지 투표하면서 한 표의 권리를 하지 않았는가.

대선의 주자가 되었던 대선 주자 모두가 마찬가지로 한 표의 주권 행사를 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나라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돌을 던졌다. 하늘에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에 묻듯이, 앞으로는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이제라도 국민 앞에 선 지도자는 참된 가슴의 소리를 진정성을 가지고 공약을 하고 실천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한낱 개도 물고가지 않을 공약은 하지 말고, 하늘과 땅 만 한 허언을 늘어놓아 국민을 잠자게 하지 말아야 하겠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죄보다도 더 큰 죄는 국민의 정신을 병폐하고, 잠들게 만드는 죄다. 그것은 ‘악’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죄도 미워하며 만물의 영장이며, 우주와 같은 생명체인 사람까지 미워하는 것이니, 하물며 정치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를 실현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치를 하는 사람은 ‘악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정치를 하고 나라를 이끌어 가려는 지도자나 소위 대중 앞에 서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묻어야 겠다. “그대들은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명제의 본질을 아는가? 그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망령”이 아직도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을 아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선거의 방송 토론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지만, 본질에 입각해서 말하는 주제 거리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한낱 지나가는 강아지도 웃을 정도, 하늘을 나는 새가 날지도 못한 것들이 땅에서 놀고 있네, 할 정도의 토론만 이어지는 듯 ‘강한 인상’을 주었고, 나도 비소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대선 몇 일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이제라도 참된 마음의 소리를 하여 국민이 정당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게 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통치자가 한 정치와 같은 개똥밭과 같은 정치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하지만 개똥밭이 싫어 이승보다 저승으로 향하는 행렬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났다니?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은 참 웃기는 소리가 아닌가. 이 사회가 혹, 똥 바다는 아닌가 생각해 볼만 한 말이다. 사람들의 머리에는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가? 오물과 같은 생각, 오물과 같은 욕심, 오물 투성이의 잡다한 이리와 같은 발톱을 세운 생각 등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은가? 이 승에서 오염되어 죽어 간 사람들이 저승에 얼마나 많으면 개똥바다인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하는 것인가. 하루에도 수 없이 질시와 탐욕에 눈 이 멀어 자식이 부모를 또한 자식이 부모를 개똥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며 자기가 사는 집 현관 밑에 죽여서 묻어두었다가 탄로 났고, 신생아를 보자기에 싸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는 못쓸 어머니의 짐승 보다 못한 인간들의 사건 사고 이야기들...,

실로 통곡할 노릇이다. 아니, 통곡의 칼날이 하늘을 난도질 하여 구멍이나 광명과 빛이 사라진 어둠의 세계로 변화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 과연 개똥밭이 살만한 세상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개똥밭을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호 하듯, 깨끗하게 정화해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오로지 자신만의 안의와 세상에 대한 탐욕으로만 사회가 움직여 가야만 하는가. 부처님조차도 세상에 배울만한 스승이 없는 것이 가장 불행 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성적 동물인 인간이 잿밥에만 눈과 정신이 돌아 버렸는가. 지구가 돌아가니, 이제 같이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는가. 그렇다면, 개인적인 정신병원이 따로 없다.

우리 모두가 지구라는 큰 땅덩어리의 정신병원에 가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란 존재가 의심에서 출발한 ‘앎’이 탐구의 정신을 잃어버려 그래서 인간 본래의 감각을 잃어버린 ‘기억상실’이란 병에 걸렸단 말인가. 일순간 탐구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었으면 이상한 믿음이 되어 맹신이 되어 버렸단 말인가. 정치하는 똥밭의 주인도, 경제를 운영하는 보스라는 명칭의 똥밭의 주인도, 문화라는 명분하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색칠로 그림을 그리는 똥밭의 작가도, 맹신의 교주가 되어 새끼 강아지를 후계자라는 명분으로, 계승자라는 명칭으로 제자라는 명분으로 잘도 ‘새끼치기’를 잘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새끼가 자라서 주인의 다리를 물어뜯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공장에서 제품 생산하듯 계속 찍어 낸다. 생각들은 이미 로봇이 되었다. 주인이 움직이는 리모컨에 의해서 조정된다. 앞으로 과학에 의한 인간이 찍어 낸 로봇이 세상을 움직여 간다는 말을 하지만 ‘헛소리’들 그만하면 좋겠다. 인간 자체가 로봇이 되어 버렸는데, 앞으로도 인간이 로봇이 되어 ‘움직여 가는 사회’란 말이 진정성의 해답일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사회 ‘오염 내음’은 여전히 천지를 진동한다. 하물며 얼마나 진동하면 거리를 지나면, 괴이한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을까. 예전 같으면 복면하고 다니면, 강도나, 도둑질 하는 사람들을 연상 했다. 그런데 요즘은 남녀누구나 마스크나, 복면과 같은 모습을 하고 얼굴을 덮고 다니는 사람들을 허다하게 본다. 얼마나 마음속에는 도둑놈과 같은 심보와 강도와 같은 부끄러운 칼날을 품고 다니면, 예전에나 있을 법한 복면강도의 마스크나, 얼굴 덮개를 가리고 다닌단 말인가. 그리고 ‘코딱지 같은 말’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가. 개개인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면서. 허탈 웃음이 절로난다. 세상에 도둑놈 천지, 강도 천지, 몸으로 행각을 보이는 것이나, 마음으로 행각을 보이는 것이나 ‘그것이 그것’이다. 성경 복음서에도 하물며 이런 말을 했을까. 세상을 향하여 “마음으로 간음하지 말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다”라고. 이제 사회는 인간의 물질이 정신을 정신이 물질을 오염시켜 버린 것은 오래 되었고, 그 순수성은 아예 사라져 모든 것이 ‘목적과 수단’을 위한 도구로 전략 되어 버렸다. 웃기고 가당찮은 ‘민주주의’, 불구가 되어버린 ‘자본주의’ 양 쌍생아가 용호상박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물질과 인간정신은 별개로 둘 수 없음에도 물질과 정신을 분리하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판을 가르며 세속과 성스러움이란 고상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언어로 정신분열증 환자로 만드는 ‘독사’와 같은(성서에서는 독사의 새기로 표현함) 성직자란 이름으로 ‘하늘나라’를 팔아먹는 종교인이 없나, 사회는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느 집 멍멍이 짖어 되듯, 맨 날 국민을 위한다며 망령된 소리를 끝도 없이 오른 주머니, 왼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다니면서 짖어대는 이쁜 강아지 소리를 퇴색 시키는 정치인들이 없나, 자기 자산 비례 100% 이상의 채무를 지니면서, 언제든지 권력의 힘 ‘한방’이면, 도산될 위험에 처해 있는, 그래서 IMF 때에는 ‘쥐새끼’처럼 숨소리 한번 못 내고, 국가 부도 상태에서 ‘몸 사리고’ 있으면서 그 후에는 은행, 공기업, 사기업 할 것 없이 외국금융자본가들에게 여자가 농락당하듯, 농락당하고도 노예근성을 가진 기업인이란 감투를 쓴 ‘매국노’들이 없나..., 참 웃기는 세상. ‘할 말이 너무 많아 말을 할 수가 없구나’ 왜냐하면 나도 개똥밭에서 자란 일원이었으니까.

 

타인을 변화시키려 말고 우선 자신부터 변화를

 

  허나, 이제부터라도 나라를 대표하고 이끌어가는 통치자는 정신 차리고 묘한 수면제와 같은 허언이나, 교언영색으로 백성을 후리려고 하지 말고 참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 사회는 우리만의 사회, 국가가 아니다. 앞서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우리 선열들의 피와 땀이요, 그리고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피와 땀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변화를 원하지 말고, 우선 개인 하나 하나가 변화되려고 힘써야 한다. 우리의 의식마저도 편식이라는 영양실조에서 벗어나서 개선(reform), 개혁(revolution),혁명(rebelition)이라는 세 가지의 의식 혁명의 명제를 머리에 담고, 머리가 대가리(일반적으로 물고기 등에 부치는 속어, 고기는 강태공에게 물려 올라오는 것을 본, 동료 물고기가 그것을 감지 못하고 자신도 고기 바늘을 물고 올라와 죽는 줄 모르고 바늘을 문다는 물고기의 대가리 상태를 말함) 가 아닌, 인간 두뇌로서의 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개선은 낡은 것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로운 수정 형태를 입히는 것이며, 개혁은 기존 뼈대를 유지 하는 것은 같지만 더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 일명 손보는 정도가 아니라, 증축의 의미를 포함한다. 셋째로 혁명인데, 혁명은 완전하게 다르다. 기존의 정치인의 구닥다리격인 정치적 이념, 미친 경제인의 망령기, 죽은 지식인들을 살려 유령을 신봉하게 하는 고상한 도덕군자격인 학자들의 미친 발상들, 이승과 저승을 딴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종교인들의 사기꾼적인 광신적인 발상 등에서 스스로를 완전하게 단절시키며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을 똥 바다로 오염시키는 군상들이 죽어버리거나, 나 스스로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또 하나의 오염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단절이라는 죽음을(죽여랴 하는)선택 해야 한 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비전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 진정한 개혁을 바라고, 진정으로 나라가 바로서서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사라지게 하는 이번에는 나와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러한 본질적인 측면에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다는 말이 죄도 미워하고 사람도 미워한다는 이리와 같은 강한 인상을 주지 않는 한 사람에게 앞으로는 진정한 지도자로 생각하며 나의 주권의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앞으로 아니 이제라도 선거에서만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선택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전 대통령에게 콩밥을 먹이게 한 정신적 행위의 ‘공모자’가 되기를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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